Wednesday, May 08, 2013

바울이 부탁한 디모데

오늘부터 목회서신인 디모데전서를 묵상한다. 하나님께서 목자의 마음, 사랑의 마음, 지혜를 주시기를 기도하면서…

바울이 디모데를 에베소에 머물게 한 이유들에 대해서 나온다.
1. 다른 교훈(different doctrine)을 가르치지 말게 하라는 것
2. 끝없는 신화와 족보에 착념하게 하지 말게 하는 것(nor to devote themselves to myths and endless genealogies, which promote speculations rather than the stewardship from God that is by faith)

이러한 목적 이전에 바울이 디모데를 에베소에 남겨둔 것은 그를 신뢰했기 때문이리라. "천년이 두 번 지나도" 찬양을 들으면서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축복을 하는 사람, 축복을 받는 사람이 되고 싶구나..오늘 하루 축복의 말, 격려의 말, 사랑의 말을 하고 그 옛날(별로 옛날 아닌가..ㅎ) 대학부에서 듣던 말..누군가의 꿈에 뛰어드는 그런 삶..우리 아들과 딸 그리고 아내 뿐 아니라 성도들의 꿈을 꿔주자. 바울이 디모데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아니 가장 먼저 주님이 나에게 하셨던 것처럼.

다른 교훈이란?
끝없는 신화와 족보에 착념하게 되는 것은 바울과 디모데가 전한 교훈의 목적이 사랑임을 잊어버리고 변론에 빠지게 되고 율법 선생이 되려고 함. 자기를 나타내는데 목적이 있다. 설교하고 티칭하고 권면하고 사역하는 모든 것의 목적은 "사랑"에 있고 그 사랑은 a pure heart, a good conscience, and a sincere faith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내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사랑으로 이끌어주기를 기도하면서 사역해야 하는 것이다. 
동시에 다른 교훈에는 단호히 맞서서 진리를 보수해야 한다. 

적용
1. 오늘 하루 격려의 말, 사랑의 말, 그리고 축복의 말을 하도록 노력하고
2. 사역을 임하는 (수요예배)데 있어서 사랑으로 행할 수 있도록 하고
3. 미움이 드는 사람을 품도록 기도해보자.

5월의 첫째날 2013년


Tuesday, March 19, 2013

Jacob and His Family...Modern Family & Church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의 생애와 특히 그 가족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이름은 있지만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삶이 완전히 빠져있는 것을 발견한다.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 그리고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지만 여전히 야곱에게는 경험되지 못한 하나님. 그런 하나님의 이름을 습관적으로 부르고 또 몇 번의 위기 때마다 도우셔서 어느 정도는 알지만 그 분이 삶의 주인이 되지는 못한 그런 하나님... 그의 가정은 여전히 우상과 세속적인 가치관들에 의해 움직여지고, 아버지이며 가장인 야곱은 그 중심에서 무기력하게 신앙의 리더가 되지 못하고 있다. 그 맘 속에는 아스라히 이전 신앙의 추억들이 지나가고 있었을지 모르고, 벧엘에서 만났던, 얍복강에서 만났던 하나님에 대한 그리움이 선뜻선뜻 떠올랐을지 모르겠다. 결국 사랑하는 딸 디나의 더럽혀짐 앞에 그리고 그 오빠들이 저지른 피의 복수 앞에 완전히 소외되고, 그 아들들이 그렇게 자라기까지 전혀 손을 못쓰는 야곱의 모습을 보면서,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인 나 역시 세속의 가치에 함몰되어 그저 하나님의 이름만 부르고 있지는 않은지, 정말 경건의 모양만 남은 채 능력이 없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더 아픈 것은 지금의 교회들이 이런 모습이 아닌지... 야곱은 다시 하나님을 처음 만났던 벧엘로 올라간다. 모든 세속의 가치들의 상징인 우상을 벗어버리고 환난날에 응답하셨던 하나님을 대면하러 가는거다. 내가, 우리의 가정이 그리고 교회가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 아닐까. 세속의 가치들과 습관들과 경험들을 일단 묻어버리고 참 하나님이신 그리스도 앞에, 그 복음 앞에 직면하는게 아닐까... 십자가 앞에 섰을 때 모든 해답이 있는게 아닐까. 주여,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페북이냐 블로그냐

여전한 고민이다. 페북이냐, 블로그냐... 페북은 여전히 팬시하고, 블로그는 여전히 무겁다. 옆에 앉은 대니 목사님은 블로그를 강추하고 (사실 자기도 하지 않는다 ㅎ)... 오늘 고민해보고 다시 도전이다.

Saturday, July 30, 2011

일년만에

일년만에 블로그를 들여다본 것 같다. 시작은 해놓고 종합시험이니 입원이니 여러 사정으로 꾸준히 관리하지 못하고 칵테일 파티같은 페북에 심취했었네. 사실 조금 무겁거나 이슈가 되는 글을 페북에 올리긴 힘들고 블로그를 통해 이야기하길 원했는데 쉽지않다.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조금 더 노력해봐야겠다. 일단 오늘은 책 소개 하나하고.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의 오류와 함정에 대해서 저자는 말하는데 매우 통찰력 있는 지적이다. 지금은 소개하고 (읽고 있는 중이라) 리뷰는 담 시간에~

Thursday, June 03, 2010

Close Call

선거가 끝났다. 너무나 박빙의, 정말 초접전이라고 밖에 할 수 없었던 서울시장선거를 비롯하여 지방선거가 이제 그 막을 내렸다. 결과는 야당의 압승. 민심의 이완현상을 막을 수 없었던 한나라당의 오만과 착각이 불러온 당연한 결과였다. 북풍을 이용하여 몰아붙인 전근대적인 발상에다가 2006년 선거에서 완승했던 기억을 자만으로 발출한 교만이 어우러져 국정의 운영권을 다 내주고만 것이다. 아싸.
역시 민주주의는 국민의 마음을 먹고 사는 것이며 국민의 마음을 설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어제 인터넷을 보며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댓글 두 개가 생각이 난다. 하나는 "주인 섬기라고 머슴시켰더니 주인행세하다가 망했다"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천안함에 써있던 1'번'이 너무 무서워서 선거때도 1'번'을 못찍었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국민의 의사가 이렇게 전달이 되었지만 현재까지 이장로님의 행태를 봐서는 잘 모르겠다. 폭탄주 -아니 막걸린가?-한 사발에 선거결과 깨끗이 잊고 다시 밀어붙이면 된다고 생각할까봐 걱정이다.
선거결과의 많은 부분들이 close call이었다. 서울, 경기, 충남 등등....결코 야당이 좋아서 찍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민주당도 알았음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 선거에서는 close call로 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바보가 아님이다. 그 때도 국민들은 한나라당이 좋아서 찍는 것이 아닐게다. 역사는 되풀이 되지만, 조금 더 성숙한 선택들에 의해서 전진되어지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

Tuesday, June 01, 2010

주 품에

이 찬양을 들으면 주님의 임재 속으로 서서히 들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아무리 나그네로서의 삶이 고단하고, 어렵더라도, 지치더라도, 그 폭풍 속에 주님의 임재가 있기에 나 역시 잠잠할 수 있는 것을 믿게 된다. 아니, 잠잠한 것이 아니라 평안일게다.
때로는 상황 앞에 격렬한 열정으로 반응하는 것보다 침묵으로, 잠잠함으로 주님을 보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음을 보게 된다. 바로 내가 주님 안에 거하게 될 때, 주님이 내 속에 계심을 확신하게 되며, 나의 영혼 주님과 함께 비상하는 감격을 누리게 된다.
사는 날 동안 주님의 능력의 팔이 늘 함께 계셔서 주님과 함께 날아오르는 삶을 살고 싶다....그런 사랑을 전하면서...

Hide me now
Under your wings
Cover me
within your mighty hand

When the oceans rise and thunders roar
I will soar with you above the storm
Father you are king over the flood
I will be still and know you are God

Find rest my soul
In Christ alone
Know his power
In quietness and trust


When the oceans rise and thunders roar
I will soar with you above the storm
Father you are king over the flood
I will be still and know you are God

1. 주 품에 품으소서 능력의 팔로 덮으소서.
2. 주님 안에 나 거하리 주 능력 나 잠잠히 믿네.

거친 파도 날 향해 와도 주와 함께 날아오르리.
폭풍 가운데 나의 영혼 잠잠하게 주를 보리라

Wednesday, May 19, 2010

포도원 품꾼들의 비유

마태복음 20:1-16

천국의 주도권/구원의 주도권은 오로지 하나님이 가지고 계시는 것이다. 하나님 맘대로다. 만약 이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사람의 기준대로, 사람의 잣대로 공평성을 평가한다면 실족하게 될 것이다. 사실 잘못된 것이 없다. 왜냐하면, 13절의 말씀처럼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며, 14절처럼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기 때문이다. 어린아이가 예수님께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는 것과 부자청년에 이어서 오늘 본문 역시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되는 진리를 가르치신다. 천국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Reversal이라는 것이다. 이 세상의 논리가 지배하지 못하는 곳이 천국이며, 천국에는 그곳의 원리가 있다. 그곳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곳이다.
또한 본문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사실 모두가 주인이 부르지 않았으면 포도원에 들어올 수도 없는 자들이었다. 주인이 불렀기 때문에 와서 일한 것이다. 6절에 "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고 주인이 물었을 때 그들은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고 말한다 (7절). 이 사람들은 아무도 들이는 사람이 없었는데 주인이 들인 것이다. 은혜다. 그 은혜 앞에 따질 것이 없는 것이다. "God's grace, in short, is not the sort of thing you can bargain with or try to store up. It isn't the sort of thing that one person can have a lot of and someone else only a little. The point of the story is that what people get from having served God and his kingdom is not, actually, a 'wage' at all. It's not , strictly, a reward for work done. God doesn't make contracts with us, as if we could bargain or negotiate for a better deal. He makes covenants, in which he promises us everything and asks of us everything in return. When he keeps his promises, he is not rewarding us for effort, but doing what comes naturally to his overflowingly generous nature" (Wright, Matthew for Everyone II, 57). "요약하건대,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흥정거나 쌓아놓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어떤 사람은 많이 가질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적게 가지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다. 이 비유의 요점은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섬기는 사람들이 얻는 것은 실제로 '삯'이 아니라는 것이다. 엄격히 말하면, 일을 잘해서 얻는 상급이 아니다. 하나님은 마치 우리가 더 좋은 조건으로 흥정 혹은 협상하는 것과 같이 계약을 맺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약속하시고 우리가 그것을 모두 이행하도록 요구하시는 언약을 맺으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지킬 때, 하나님은 우리의 노력에 대하여 상급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의 넘치도록 너그러우신 성품에 맞는 것을 행하시는 것이다."

만약 라이트의 말대로 이 비유가 제자들을 향한 것이라면 (분명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 대한 것일 수도 있겠다), 주님을 섬기는 가장 핵심에 있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먼저 은혜로 있게 되었을 뿐 은혜를 먼저 체험하고 받았다는 것이 상급의 증거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은혜에 대한 감격으로 섬기는 것, 최선을 다해 은혜를 알고 갚는 삶을 사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나에게 적용한다면
  1.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얼마나 깊이 깨닫고 있는가? 포도원 밖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있었던 나를 은혜로 하나님의 포도원으로 부르신 그 은혜, 아무런 공로 없는데 부르신 그 은혜를 나는 더욱 깊이 깨닫는가?
  2. 같은 은혜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들과 경쟁하는 모습은 없는가? 좀 더 익숙하다고 해서, 좀 더 수고했다고 해서 같은 하나님의 백성을 멸시하거나 무시하거나 얕보는 경우는 없는가?
  3. 보상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으로 일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보상을 위해 일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