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May 08, 2013

바울이 부탁한 디모데

오늘부터 목회서신인 디모데전서를 묵상한다. 하나님께서 목자의 마음, 사랑의 마음, 지혜를 주시기를 기도하면서…

바울이 디모데를 에베소에 머물게 한 이유들에 대해서 나온다.
1. 다른 교훈(different doctrine)을 가르치지 말게 하라는 것
2. 끝없는 신화와 족보에 착념하게 하지 말게 하는 것(nor to devote themselves to myths and endless genealogies, which promote speculations rather than the stewardship from God that is by faith)

이러한 목적 이전에 바울이 디모데를 에베소에 남겨둔 것은 그를 신뢰했기 때문이리라. "천년이 두 번 지나도" 찬양을 들으면서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축복을 하는 사람, 축복을 받는 사람이 되고 싶구나..오늘 하루 축복의 말, 격려의 말, 사랑의 말을 하고 그 옛날(별로 옛날 아닌가..ㅎ) 대학부에서 듣던 말..누군가의 꿈에 뛰어드는 그런 삶..우리 아들과 딸 그리고 아내 뿐 아니라 성도들의 꿈을 꿔주자. 바울이 디모데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아니 가장 먼저 주님이 나에게 하셨던 것처럼.

다른 교훈이란?
끝없는 신화와 족보에 착념하게 되는 것은 바울과 디모데가 전한 교훈의 목적이 사랑임을 잊어버리고 변론에 빠지게 되고 율법 선생이 되려고 함. 자기를 나타내는데 목적이 있다. 설교하고 티칭하고 권면하고 사역하는 모든 것의 목적은 "사랑"에 있고 그 사랑은 a pure heart, a good conscience, and a sincere faith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내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사랑으로 이끌어주기를 기도하면서 사역해야 하는 것이다. 
동시에 다른 교훈에는 단호히 맞서서 진리를 보수해야 한다. 

적용
1. 오늘 하루 격려의 말, 사랑의 말, 그리고 축복의 말을 하도록 노력하고
2. 사역을 임하는 (수요예배)데 있어서 사랑으로 행할 수 있도록 하고
3. 미움이 드는 사람을 품도록 기도해보자.

5월의 첫째날 2013년


Tuesday, March 19, 2013

Jacob and His Family...Modern Family & Church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의 생애와 특히 그 가족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이름은 있지만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삶이 완전히 빠져있는 것을 발견한다.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 그리고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지만 여전히 야곱에게는 경험되지 못한 하나님. 그런 하나님의 이름을 습관적으로 부르고 또 몇 번의 위기 때마다 도우셔서 어느 정도는 알지만 그 분이 삶의 주인이 되지는 못한 그런 하나님... 그의 가정은 여전히 우상과 세속적인 가치관들에 의해 움직여지고, 아버지이며 가장인 야곱은 그 중심에서 무기력하게 신앙의 리더가 되지 못하고 있다. 그 맘 속에는 아스라히 이전 신앙의 추억들이 지나가고 있었을지 모르고, 벧엘에서 만났던, 얍복강에서 만났던 하나님에 대한 그리움이 선뜻선뜻 떠올랐을지 모르겠다. 결국 사랑하는 딸 디나의 더럽혀짐 앞에 그리고 그 오빠들이 저지른 피의 복수 앞에 완전히 소외되고, 그 아들들이 그렇게 자라기까지 전혀 손을 못쓰는 야곱의 모습을 보면서,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인 나 역시 세속의 가치에 함몰되어 그저 하나님의 이름만 부르고 있지는 않은지, 정말 경건의 모양만 남은 채 능력이 없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더 아픈 것은 지금의 교회들이 이런 모습이 아닌지... 야곱은 다시 하나님을 처음 만났던 벧엘로 올라간다. 모든 세속의 가치들의 상징인 우상을 벗어버리고 환난날에 응답하셨던 하나님을 대면하러 가는거다. 내가, 우리의 가정이 그리고 교회가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 아닐까. 세속의 가치들과 습관들과 경험들을 일단 묻어버리고 참 하나님이신 그리스도 앞에, 그 복음 앞에 직면하는게 아닐까... 십자가 앞에 섰을 때 모든 해답이 있는게 아닐까. 주여,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페북이냐 블로그냐

여전한 고민이다. 페북이냐, 블로그냐... 페북은 여전히 팬시하고, 블로그는 여전히 무겁다. 옆에 앉은 대니 목사님은 블로그를 강추하고 (사실 자기도 하지 않는다 ㅎ)... 오늘 고민해보고 다시 도전이다.

Saturday, July 30, 2011

일년만에

일년만에 블로그를 들여다본 것 같다. 시작은 해놓고 종합시험이니 입원이니 여러 사정으로 꾸준히 관리하지 못하고 칵테일 파티같은 페북에 심취했었네. 사실 조금 무겁거나 이슈가 되는 글을 페북에 올리긴 힘들고 블로그를 통해 이야기하길 원했는데 쉽지않다.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조금 더 노력해봐야겠다. 일단 오늘은 책 소개 하나하고.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의 오류와 함정에 대해서 저자는 말하는데 매우 통찰력 있는 지적이다. 지금은 소개하고 (읽고 있는 중이라) 리뷰는 담 시간에~

Thursday, June 03, 2010

Close Call

선거가 끝났다. 너무나 박빙의, 정말 초접전이라고 밖에 할 수 없었던 서울시장선거를 비롯하여 지방선거가 이제 그 막을 내렸다. 결과는 야당의 압승. 민심의 이완현상을 막을 수 없었던 한나라당의 오만과 착각이 불러온 당연한 결과였다. 북풍을 이용하여 몰아붙인 전근대적인 발상에다가 2006년 선거에서 완승했던 기억을 자만으로 발출한 교만이 어우러져 국정의 운영권을 다 내주고만 것이다. 아싸.
역시 민주주의는 국민의 마음을 먹고 사는 것이며 국민의 마음을 설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어제 인터넷을 보며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댓글 두 개가 생각이 난다. 하나는 "주인 섬기라고 머슴시켰더니 주인행세하다가 망했다"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천안함에 써있던 1'번'이 너무 무서워서 선거때도 1'번'을 못찍었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국민의 의사가 이렇게 전달이 되었지만 현재까지 이장로님의 행태를 봐서는 잘 모르겠다. 폭탄주 -아니 막걸린가?-한 사발에 선거결과 깨끗이 잊고 다시 밀어붙이면 된다고 생각할까봐 걱정이다.
선거결과의 많은 부분들이 close call이었다. 서울, 경기, 충남 등등....결코 야당이 좋아서 찍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민주당도 알았음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 선거에서는 close call로 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바보가 아님이다. 그 때도 국민들은 한나라당이 좋아서 찍는 것이 아닐게다. 역사는 되풀이 되지만, 조금 더 성숙한 선택들에 의해서 전진되어지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

Tuesday, June 01, 2010

주 품에

이 찬양을 들으면 주님의 임재 속으로 서서히 들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아무리 나그네로서의 삶이 고단하고, 어렵더라도, 지치더라도, 그 폭풍 속에 주님의 임재가 있기에 나 역시 잠잠할 수 있는 것을 믿게 된다. 아니, 잠잠한 것이 아니라 평안일게다.
때로는 상황 앞에 격렬한 열정으로 반응하는 것보다 침묵으로, 잠잠함으로 주님을 보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음을 보게 된다. 바로 내가 주님 안에 거하게 될 때, 주님이 내 속에 계심을 확신하게 되며, 나의 영혼 주님과 함께 비상하는 감격을 누리게 된다.
사는 날 동안 주님의 능력의 팔이 늘 함께 계셔서 주님과 함께 날아오르는 삶을 살고 싶다....그런 사랑을 전하면서...

Hide me now
Under your wings
Cover me
within your mighty hand

When the oceans rise and thunders roar
I will soar with you above the storm
Father you are king over the flood
I will be still and know you are God

Find rest my soul
In Christ alone
Know his power
In quietness and trust


When the oceans rise and thunders roar
I will soar with you above the storm
Father you are king over the flood
I will be still and know you are God

1. 주 품에 품으소서 능력의 팔로 덮으소서.
2. 주님 안에 나 거하리 주 능력 나 잠잠히 믿네.

거친 파도 날 향해 와도 주와 함께 날아오르리.
폭풍 가운데 나의 영혼 잠잠하게 주를 보리라

Wednesday, May 19, 2010

포도원 품꾼들의 비유

마태복음 20:1-16

천국의 주도권/구원의 주도권은 오로지 하나님이 가지고 계시는 것이다. 하나님 맘대로다. 만약 이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사람의 기준대로, 사람의 잣대로 공평성을 평가한다면 실족하게 될 것이다. 사실 잘못된 것이 없다. 왜냐하면, 13절의 말씀처럼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며, 14절처럼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기 때문이다. 어린아이가 예수님께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는 것과 부자청년에 이어서 오늘 본문 역시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되는 진리를 가르치신다. 천국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Reversal이라는 것이다. 이 세상의 논리가 지배하지 못하는 곳이 천국이며, 천국에는 그곳의 원리가 있다. 그곳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곳이다.
또한 본문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사실 모두가 주인이 부르지 않았으면 포도원에 들어올 수도 없는 자들이었다. 주인이 불렀기 때문에 와서 일한 것이다. 6절에 "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고 주인이 물었을 때 그들은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고 말한다 (7절). 이 사람들은 아무도 들이는 사람이 없었는데 주인이 들인 것이다. 은혜다. 그 은혜 앞에 따질 것이 없는 것이다. "God's grace, in short, is not the sort of thing you can bargain with or try to store up. It isn't the sort of thing that one person can have a lot of and someone else only a little. The point of the story is that what people get from having served God and his kingdom is not, actually, a 'wage' at all. It's not , strictly, a reward for work done. God doesn't make contracts with us, as if we could bargain or negotiate for a better deal. He makes covenants, in which he promises us everything and asks of us everything in return. When he keeps his promises, he is not rewarding us for effort, but doing what comes naturally to his overflowingly generous nature" (Wright, Matthew for Everyone II, 57). "요약하건대,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흥정거나 쌓아놓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어떤 사람은 많이 가질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적게 가지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다. 이 비유의 요점은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섬기는 사람들이 얻는 것은 실제로 '삯'이 아니라는 것이다. 엄격히 말하면, 일을 잘해서 얻는 상급이 아니다. 하나님은 마치 우리가 더 좋은 조건으로 흥정 혹은 협상하는 것과 같이 계약을 맺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약속하시고 우리가 그것을 모두 이행하도록 요구하시는 언약을 맺으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지킬 때, 하나님은 우리의 노력에 대하여 상급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의 넘치도록 너그러우신 성품에 맞는 것을 행하시는 것이다."

만약 라이트의 말대로 이 비유가 제자들을 향한 것이라면 (분명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 대한 것일 수도 있겠다), 주님을 섬기는 가장 핵심에 있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먼저 은혜로 있게 되었을 뿐 은혜를 먼저 체험하고 받았다는 것이 상급의 증거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은혜에 대한 감격으로 섬기는 것, 최선을 다해 은혜를 알고 갚는 삶을 사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나에게 적용한다면
  1.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얼마나 깊이 깨닫고 있는가? 포도원 밖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있었던 나를 은혜로 하나님의 포도원으로 부르신 그 은혜, 아무런 공로 없는데 부르신 그 은혜를 나는 더욱 깊이 깨닫는가?
  2. 같은 은혜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들과 경쟁하는 모습은 없는가? 좀 더 익숙하다고 해서, 좀 더 수고했다고 해서 같은 하나님의 백성을 멸시하거나 무시하거나 얕보는 경우는 없는가?
  3. 보상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으로 일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보상을 위해 일하는가?

Thursday, April 29, 2010

복음에 서 있는 삶

점점 복음에 따라 사는 것이 힘들다. 어려서는 참 쉽다고 생각했었는데. 복음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가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복음이 여전히 무엇인지 알지 못해서 그런지 모르겠다. 내 생활도, 목회도, 공부도, 모든 것이 "복음적"이면 좋겠다. "십자가 중심"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하루를 살아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Wednesday, April 21, 2010

진국 인생

나는 곰탕을 무척 좋아한다. 뽀얗게 내린 국물에 밥을 말아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 다음 파를 잔뜩 넣고 깍뚜기 국물을 가득 부어 한 입 후루룩~ 하면...캬....곰탕의 생명은 뭐니뭐니해도 국물에 있다. 오랜 시간 푹 고아서 우러난 그 국물의 맛이 없다면 그것은 곰탕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요즘 음식점에 가면(물론 어제 오늘일은 아니지만) 곰탕의 국물맛 대신 프림맛이 난다. 국물을 오래 오래 고아서 제 맛을 내려면 시간과 정성이 아주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순간의 맛을 내기 위하여 조미료로 맛을 내고, 프림으로 색을 내는 것이다. 그런 곰탕을 먹고나면 뱃속에서의 반란은 말할 것도 없고 기분이 무지하게 나빠진다. 그리고 이내 진국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이런 진국과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나이스하면서 중립을 지키는 것 같지만 그 속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의도를 읽으며 철저히 자기의 유익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래 고아낸 국물처럼 찰나의 맛은 없어도 푸근한 사람이 그립다. 그리고 내가 다른 이들에게 그런 진국으로 남기를 소원해본다.

Sunday, April 18, 2010

Josh's birthday party

우리 아들 하람이가 벌써 9살이다. 한국나이로는 10살이다. 오늘 가족들과 함께 (이모네, 장모님), 생일 파티를 했다. 필레미뇽 스테이크를 그릴했는데 지금까지의 작품중 가장 맛있게 되었다. 거하게 먹은 후 볼링 행.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정의 따뜻함과 아름다움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조카 주안이가 스스로 볼링공을 잡고 치는 것을 보면서 다들 신기해하고 웃었다. 우리 장하고 잘생긴 아들이 이름처럼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숙해 나가기를 기도한다. 사랑한다, 내 아들!

Thursday, April 15, 2010

Pastoral Sensitivity?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목회적 민감함" 정도가 되겠다. 학자들간의 격렬한 토론을 지켜보고 읽으면서, 그것이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처럼 서로의 논지와 이론을 발전시켜 주기는 하지만, 때로는 상대의 감정을 찌르는 (의도했건 아니건) 비수가 되어 꽂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느 목사님이 이야기한 것 같이, 학자들의 세계에서 실력이 없으면 "매장"당하는 (그것도 아주 nasty하게) 현실은 약육강식의 논리가 좀 더 곱게 포장된 세계의 축소판이 아닐까? 한마디 글을 쓰더라도 그리고 한마디 말을 하더라도 상대의 감성과 인격을 헤아리며 행해지는 글쓰기와 말하기가 그리워지는 것은 나만의 naive한 생각이 아닐까? 그런 사람을 실력없는 사람으로 한 수 아래 잡아보며 눌러버리는 것이 아니라 격려해주며 함께 세워져 가는 것을 꿈꾸는 것은 이상인가...

Wednesday, November 18, 2009

Counterfeit Gods


내 마음과 우리 사회의 우상들이 무엇인지 알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하나님께서 자리하셔야 할 공간에 다른 것이 있다면 -심지어 그것이 아주 훌륭한 교리라 할지라도-그것은 다름 아닌 우상이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아주 실제적으로 쓰여졌지만 그 배후에는 훌륭한 리서치의 노력이 숨어있는 좋은 책이다.
"We think that idols are bad things, but that is almost never the case. The greater the good, the more likely we are to expect that it can satisfy our deepest needs and hopes.Anything can serve as a counterfeit god, especially the very best things in life."

Friday, November 13, 2009

Facebook & Twitter

한국 사는 동생이 요즘 facebook이나 twitter가 없으면 의사소통하기 힘들다고 전화에서 이야기했다. facebook은 조금 했지만 twitter는 그다지 많이 쓰지 못하는데, 한국은 잘 모르겠고 미국에서는 이미 한국의 싸이만큼이나 유행하고 있는 것이 facebook이다. 덕분에 떨어져 있는 친구들과 연락할 수 있었고, 현재도 이 사이트를 통해서 안부도 전하곤한다. 싸이보다는 훨 심플해서 좋고, 그리 부담 없는 것이 딱 미국식이다. 한 번 써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래도 업데이트하려면 꽤 신경써야 하는데 그것이 웹상의 최소한 노력이 아닐까

Wednesday, July 22, 2009

그바보

그바보(그저바라보다가)라는 드라마를 봤다. 참 오랜만에 본 한국 멜로드라마였다. 시청률이 그닥 높지도 않았고, 내용도 사실은 너무나 뻔한 이야기였다. 평범하다 못해 멍청하기까지 한 남자와 톱여배우인 스타녀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였다. 탑 여배우이자 국민스타인 한지수 (김아중) 와 그녀의 팬이며 평범한 우체국 직원 구동백 (황정민)은 6개월간의 계약결혼을 하지만 결국 사랑하게 되어 결혼으로 골인한다는 판타지 동화같은 이야기다. 뻔한 설정에, 유치한 스토리지만 구동백이라는 인물을 통해 참 따뜻함과 푸근함을 느낄 수 있었다. 자기가 사랑하는 지수를 위하여 자기의 자존심과 심지어 존재까지도 무시당하는 것을 감수하고, 지수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불사하는 어쩌면 있을 수 없는 캐릭터를 통해 "배려"란 무엇인지 참"사랑"이란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했다. 물론 유쾌한 장면들도 많았고 김의찬이란 작가-순풍산부인과의 작가 중 하나였다고-는 아마 나랑 비슷한 세대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랑이란 배려이고, 가슴아픔이고, 그저 바라보아도 좋은 무엇이라면 나 역시 그런 사랑을 하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사랑이 가장 따뜻하게 다가온 것은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 하나님께서 심어놓으신 그 분의 사랑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자기를 버리고, 존재까지도 무시하시고, 모든 것을 불사하신 바로 그 완전한 사랑.

Wednesday, June 03, 2009

Growing in Christ

지난 주말과 이번 주초를 지나면서 "그리스도인의 성숙"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기회가 있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주님 앞에서 "빚어져가야 하는 모습"은 어떤 것인지, 어떤 것이 성숙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는 것인지...예수님을 닮는다는 것은 그저 신앙경력이 쌓이는 것이 아니라 인격이 그리고 언행이 자라가는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제일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것이지만 그것이 제일 어려운 것임을 또한 보게 된다.
내 삶은 주님께서 주시는 일상을 사는 것임을 기억하는 것으로 출발한다. 그 일상 위에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과 은택의 열매를 맺어나가는 것이며, 그 열매는 일상을 통해 표현된다. 주어진 삶 속에서 그리고 평소의 삶이 하나님 앞에 성실하고, 정결하며, 자라가는 삶이어야 함을 알게되는 것이다. 말이 변하고, 인격이 변하고, 그래서 마음 속에 가득한 것이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되셔서 나오는 것들이 하나님을 반영하는 그런 삶, 그게 성숙이 아닌가 싶다.

Romans 8

지난 주일에 성경암송대회가 있었다. 가장 어린 우리 딸 예람이로부터 95세이신 이행준 장로님까지 많은 교인들이 참석하여 로마서 8장 전체를 암송하는 "묘기"를 선보였다. 특히 항암치료를 받으시는 중에 암송대회에 참석하셔서 끝까지 다 외우신 김성례 권사님과 노구를 이끄시고 참석하신 이행준 장로님의 암송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과 여운을 주었다. 그리고 그 분들을 보면서 과연 아무도 하나님의 사람들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확신하였다.
우리 아들 하람이와 예람이도 참석했다. 비록 조금 부족했지만, 너무나 장하고 기특했다. 이름처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예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기도해본다. 사랑스런 내 새끼들.

The Issue

근 한달동안 한국은 물론 세계의 이슈가 되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고졸자, 인권변호사, 국회의원, 대통령. 많은 역경과 편견을 몸으로 막아내며 정도를 걸으려고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
이른바 "망신주기 수사"가 그를 이렇게 몰아갔다는 것도, 자식 앞에 한없이 작아져서 그랬다는 것도, 자신의 신념과 전부였던 도덕성이 무너진데 대한 자책감도, 그리고 많은 것들이 그의 죽음에 대한 이유로 거론된다.
그의 죽음 이후에 임기 중 그리고 생전에 전혀 들어보지도 못했던 긍정적 평가가 나오는 것을 보면서 사람의 가치는 그가 없어야 진정으로 나타나는 것을 알게된다. 권위의식을 타파하고, 서민들과 함께 웃고 울었으며, 보다 공정하고 살맛나는 세상을 위해 노력했던 대통령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그는 역시 저 세상으로 가면서도 이슈를 선점하고 가는 천재다.

Friday, May 22, 2009

The Fruit of the Spirit

청년들과 함께 공부하고 있는 "성령의 열매." 그 아홉가지 열매가 사실은 하나이다. 성령의 열매들이 아니라 성령의 열매이다. 아홉 가지 열매 모두가 하나로 성령의 "열매"라는 뜻이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온유, 충성 절제인데 이 책에서 다루는 기본적인 가르침은 이 모든 것들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라는 것 즉 사랑과 화평 등 모든 것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알아갈 때에 보다 풍성하게 이런 열매들을 맺어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열매들이 하나 하나씩 익어가서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사람이 되어가기를 소망해 본다. 이 모든 것을 가졌던 한 사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었으니,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는 것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의 다른 말이라고 하겠다. 주님 닮기 원하는 것, 알아가는 것이 내 평생의 소원이 되기를 또한 기도해본다. 그리고 그것을 전염시키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면서...
"But the fruit of the Spirit is love, joy, peace, patience, kindness, goodness, faithfulness, gentleness and self-control. Against such things there is no law" (Galatians 5:22-23)

Tuesday, May 19, 2009

German Exam

진작에 봤어야 하는데 미루다가 6월에 보기로 한 독일어 시험...슬슬 압박이 온다. 그렇게 힘들지도 않지만, 쉽지도 않아 방심할 수 없는 시험. 간단한 단락 하나 혹은 두 세개를 한 시간에 번역하지만 어려운 문장이라 부담이 되기도 한다. 시간을 내어 완전히 투자해야하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다른 책에 눈이 가서 조금밖에 catch up을 못했으니...
그래도 꼭 패스해야겠다. 휴...그다음엔 불어라니...

Monday, May 18, 2009

To be a pastor...To be a student

주말에는 완전히 풀타임 사역을 하는 듯 싶다. 이번 주에는 목사님께서 휴가를 가셔서 좀 더 일이 많았다. 금요일 요한청년회 모임, 토요일 한국학교 피크닉, 토요일 저녁 디모데 모임, 주일 설교-성경공부, 그리고 남녀전도회 월례회 말씀... 우와...
그리고 정신이 좀 드니까 이제 시험 준비를 하는 학생으로 돌아왔다. 피곤하다. 그래도 하나님 말씀 전하는 것, 공부하는 것 감사함으로 감당할 수 있어서 기쁘다.
공부하며 사역하는 목사님들에게 박수를....